kict 창조신학연구소
 
작성일 : 11-02-17 19:53
예수님의 부활과 세마포 소동 2(결론)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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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틴의 예수님은 정말 이처럼 생겼을까?



예수님의 부활과 세마포 소동 2(결론)





이제 세마포 소동에 대해 과학적인 것을 참고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비추어 이 문제에 대한 마지막 결론을 내려 보고자 한다.

 예수님 당시에는 사람이 죽으면 먼저 시체를 씻은 후에 여러 가지 향료와 함께 기름을 바르는 풍습이 있었다. 사실 그 기름은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성경에도 보면 마리아가 향유를 불필요하게 낭비했다고,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에게 책망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가롯 유다는 훗날 예수님을 배반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자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또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라고 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 가지고 무덤으로 달려가는 장면이 복음서에 나온다.

 영생과 진리의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예수님이 잡하시기 전날 밤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예수님이 돌아가ㅣ자 물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고 요한복음은 전하고 있다. 이때 니고데모가 가져온 몰약과 침향은 지금의 미터법으로 계산하면 약 45킬로그램이나 되는 꽤 많은 양이었다.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은 개켜져 있었다. 아무튼 결례 의식을 행하고 나면 시체는 때묻지 않은 세마포에 싸여졌다. 이런 일은 주로 여인들이 했는데 천조각은 함께 이은 것으로 매듭이 없어야 했다.

 유대인의 장례 습관과 성경이 전하는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예수님의 시체를 싸매는 데에도 당시의 풍습대로 여러 조각의 천을 이은 세마포를 사용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토리노 성당에 있는 문제의 수의처럼 예수님을 쌌던 세마포는 길이 4.5미터, 폭 1.2미터짜리 통베를 사용한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는 이보다 훨씬 길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20장 5절부터 7절에 보면 에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몸을 쌌던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다른 곳에 개켜져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토리노 성당의 수의에는 몸의 다른 부분과 얼굴의 모습이 같은 천에 함께 나타나 있다.

 성경 원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몸을 여러 조각으로 된 천으로 쌌을 뿐 아니라 미라를 만들 때 쌌던 것 같고 좁고 길다란 붕대 같은 것으로 쌌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렇게 볼때에 토리노 성당의 수의는 아무래도 예수님 당시의 풍습이나 성경의 기록과는 족므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또 한 가지의 문제는, 예수님의 시신이 세마포로 싸매지기 전에 과연 시신이 씻겨졌는가 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토리노 성당의 수의가 예수님의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되려면 먼저 예수님의 시신이 씻겨지지 않았다는 가정이 성립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님의 시신이 정말로 결례가 행해졌다면 그럴 시간이 과연 있겠는가 하는 문제도 생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안식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유대인들이 이때 결례를 행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소식을 전하는 유대인의 계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안식일에도 시체에 향유를 바르는 일은 가능하다. 단지 그러려면 반드시 다리가 꺾이지 않아야 한다. 머리 밑에는 베개를 넣어 둘수도 있다. 또한 턱을 묶어둘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턱을 서로 맞붙여 두려는 것보다는 더 이상 아래로 쳐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시신이 씻겨져서 장사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만약 예수님의 시체가 결례 의식을 치르지 않고 장사되었다면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시체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따랐다는 표현은 결코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니고데모가 가지고 온 향품이 분명히 사용되었다면 그 시체를 먼저 깨끗이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을 것이다. 시체를 가져다가 씻지도 않고 향품을 바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시신이 씻겨졌다면 핏자국은 거의 제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토리노 성당의 수외에는 너무도 많은 핏자국이 묻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리노 성당의 수의는 분명히 예수님의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반론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누가복으믜 말씀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새벽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이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이 내용은 예수님의 시신이 결례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장사되었으며 그런 상태에서 부활하였음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진품의 여부에 대하여 말썽이 끊이지 않던 토리노 성당의 수의는 지난 1988년에 연대 측정 결과가 발표된 이후이 수의가 예수님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또 그렇게 귀중하게 성의를 보관해 오던 성당과 바티칸 측도 과학적 결과를 존중하여 이 수의가 예수님의 것이 아니라고 발표를 해버렸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수의의 진품 여부에 대한 결론은 이제 끝나 버린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스페인 예수회의 코에로 보르고 신부는 “수의의 신비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수의에 관심을 갖도록 계획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사람들이 과학의 힘을 빌어 성의의 신비에 도전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 프랑스 베르나르 대학 방사성 탄소 연구소장 자크 에벵교수는 파리마치라는 잡지와의 회견에서 “과학자들의 끝없는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수의의 신비를 완전히 해명하기 위해서는 앞으ㅏ로도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마포 논쟁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도대체 세마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얼마 전에 국내의 신문들은 해외 토픽란을 통하여 모세의 시체가 발굴되었다고 보도하여 큰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보다도 약 1500년 전에 살았던 이 모세의 시신도 예수님의 세마포 못지않은 기독교의 유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문제도 자세히 조사를 해 보았다. 그랬더니 모세의 시체라고 주장했던 그 사진은 꼭 일년 전에 노아의 시체라고 주장했던 것과 동일한 사진이었음이 밝혀졌다. 또 이 기사의 출처는 선정적이거나 형편없는 황당한 기사를 주로 보도하는 영국의 황색신문 <선> 지였다.

 도대체 이렇게 이런 터무니없는 내용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런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사람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 같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고난 당하셨던 십자가도 치우셨다. 예수님이 쓰셨던 가시 면류관도 보관되어 있지 않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십계명을 새긴 돌판도 없애버리셨다. 그 귀중한 법궤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는 사실 다른 종교처럼 성물을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구약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조금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께서 이런 모든 물건들을 필요 없게 하셨다. 바로 예수님만이 우리 인류의 찬양과 경배와 기도의 대상이신 주님이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오히려 이상스럽거나 신기하게 생긴 물건을 섬기는 행위를 경고하고 있다. 특히 칼뱅은 카톨릭의 이런 성물 숭배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중세 카톨릭교회들은 세마포뿐 아니라 십자가, 마리아의 머리카락, 예수님의 베내옷, 심지어 어디서 구했는지 마리아의 속내의까지 성물로 섬길 정도였다. 이런 성물들을 신기하게 여기고 섬기다가는 오히려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변질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영이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둔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을 좀더 깨달을 수 있도록 계시하여 주셨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그 어떤 보이는 것도 이제는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성경은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하였다. 우리와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사실 어떤 피조물의 형상도 필요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였지만 토리노 성당의 세마포가 예수님의 것인지 아닌지 그것을 정확하게 밝혀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학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앞으로도 그것을 명확하게 규명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세마포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것 그 이상의 어떤 이야기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중요하게 여긴 적도 없다. 이제 우리들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세마포의 진품 여부는 기독교 신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세마포의 존재보다는 단지 죽음과 죄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전해 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기독교 신앙의 신비이고 핵심이다



kict조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