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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08 21:00
신비 체험 분별을 위한 기준이 있나요?
 글쓴이 : 예성
조회 : 10,319  
신비 체험 분별을 위한 기준이 있나요?


최근 한국 교계는 다양한 신비주의 현상들이 난무하고 있다. 기독교 신비주의 역사 속에서 교회는 신비 체험에 대한 다음의 몇 가지 분별의 도구를 가지고 신비 체험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




첫째, 성경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경험(성경론)

신비 체험이 성경의 하나님, 창조, 타락, 구속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근본적 틀을 허무는 작은 여우(아 2:15)가 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주관적 체험이 자신과 이웃의 신앙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둘째, 성경적 기독론을 훼손하는 체험은 아닌가(기독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대한 복음적 기독교 교리에 탈선을 일으키는 신비적 체험은 조심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기독론에 대한 도전은 성경에 대한 훼손이요 믿음의 반역이다.



셋째,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수용 가능했던 신비 현상이나 체험인가(교회사와 교리사)

우주와 생명과 수학의 정교한 질서를 보라! 창조주 하나님은 그 질서를 만드신 하나님이다. 무질서하고 무분별한 체험은 조심해야 한다. 기독교 역사는 많은 신비적 현상과 개인적 체험들에 대해 그 진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하여 왔다. 개인의 신비 체험이 이 역사적 평가의 기준들을 넘어가게 될 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불순한 체험일 개연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소위 “금가루 현상”에 대해 서철원 박사가 기독교 역사상 그런 신앙적 체험은 없었다고 단언한 것을 주목하라.



넷째, 성경의 틀을 벗어난 첨삭된 특별 계시적 체험이 있는가(계시론)

인류를 믿음으로 인도하고 구원에 이르는 근본적 계시(특별 계시)는 성경 속에서 이미 모두 완성된 것이다. 신비 체험이 이 계시의 영역을 넘어 새로운 특별 계시를 들고 나온다면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닌 것이다. 새로운 구주, 새로운 성경(몰몬경, 통일교 교리 등)의 첨삭은 결단코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성경에 첨삭을 가하는 것에 대해 성경은 계시록에서 엄하게 경고하고 있다(계 22:18-19).



마지막으로, <성경보다 교리보다 신비적 감정 체험이 앞서거나> 기타 교리적 논쟁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성경적, 신학적 <낯선 단어>를 분별없이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경은 은사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들뜬 흥분 같은 은사가 다가 아니다. 은사는 반드시 성경과 그 열매로 판단 받아야 한다. 또한 신비 체험이 새로운 낯선 단어들을 창출해내는 것은 단순한 경험이나 사건이 아니다. 교회는 성경과 더불어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신학적 용어에 대해 치열한 논쟁과 토의를 거쳐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교리를 구성하여 왔다. 비록 과학과 기술의 발달 속에서 다양한 단어들이 새로 탄생하였더라도 이것들을 새로운 신학적, 교리적 용어로 활용하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한다. 마리아 염색체와 DNA, 예수의 염색체 숫자, 마리아의 월경, 하늘 언어, 신사도, 빈야드 운동, 구도자 위주의 열린 예배(열린교회가 아님), 부활의 복음, 제 2 선민론, 제 2 히브리민족 등과 같은 성경적으로 낯선 단어들이 신비주의와 결합할 때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 불순한 폭발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신학 전개에 있어 낯선 용어의 사용은 성령의 사람들 가운데 치열한 신학적 논증 속에서 달궈져서 그 진위를 평가 받은 다음 정금같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창조신학연구소
조덕영